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플로이에슈티 공습 (문단 편집) == 결과 == 미국과 추축국 모두 큰 손실을 입었다. 우선 미군 항공대의 피해를 살펴보자면, 처음 비행장에서 출격한 177기의 [[B-24]]중 고작 88기만이 [[리비아]]로 살아 돌아왔다. 즉 미군은 한 차례의 공습으로 무려 89기의 [[폭격기]]를 잃은 것이다. 다만 여기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, 손실한 89기 중 44기는 유전의 맹렬한 대공포화와 [[요격기]]들로 인해, 나머지 45기는 손상으로 인해 중간에 추락/불시착하거나 다른 지역에 착륙했다.[* 예를 들어서, 몇 기의 B-24는 당시 영국군 점령지역이었던 키프로스에 착륙하거나 중립국이었던 터키에 내렸다.] 승무원과 조종사 피해도 막심했다. 310명에 이르는 조종사와 폭격기 승무원들이 전사했고, 108명은 추축국에게 사로잡혀 포로가 되었다. 78명은 중립국이었던 터키에 억류되었고, 4명은 [[티토]]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에게 확보되었다. 이렇듯, 미군은 한 차례의 공습 치고서는 꽤나 큰 피해를 입었고 후일 이 날을 '검은 일요일'이라고 불렀다. 이런 막심한 손실에도 불구하고, 미군은 목표를 달성한 듯 싶었다. 플로이에슈티 유전의 45%가 공습으로 인해 마비된 것이다. 그러나 독일도 바보가 아니었던지라 이전부터 전쟁수행에 필요한 석유의 90%를 담당하는 합성석유 공장이 폭격을 받을 시 행해질 후속조치를 미리 준비해놓은 상황이었으므로 예비시설에서 차질없이 석유생산을 이어나갔고, 파괴된 시설마저도 금세 복구되었으며 루마니아가 소련군에게 점령당하는 순간까지 유전시설은 이전과 다름없이 가동되었다. 독일이 실질적으로 심각한 연료부족문제를 겪게 된 건 [[바그라티온 작전|루마니아가 소련군에게 넘어간 이후]]였다. 연합군은 작전이 실패라고 판단하여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. 이후 연합국은 [[슈바인푸르트 공습]] 당시 슈바인푸르트의 볼베어링 공장 등을 공습하기 위해 다시 한번 대편대를 동원했지만 독일의 대공부대와 공군으로 인해 실패했고 이는 하늘의 대학살이라고 회자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